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 전반에 ‘하나의 진리’ 대신 ‘다양한 시선’을 요청했다면,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서구 중심, 남성 중심, 백인 중심의 예술 교육은 점차 비판받기 시작했고, 그 대안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이 다문화 미술교육(Multicultural Art Education)으로 단순히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거나 소개받는 수준을 넘어, 비판적 사고와 문화 간 이해를 기반으로 한 실천적 교육 이론입니다.
1. 다문화 미술교육의 학문적 배경
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영향
다문화 미술교육의 사상적 기반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일한 진리, 보편적인 가치, 중심주의(centrist view)를 비판하고, 다양성과 다원성, 주변부의 목소리, 상호문화적 이해를 강조하는 철학적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기존의 서구 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미술 교육 이념을 해체하며, 예술교육의 내용과 방식 자체를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누구의 시선으로 예술을 가르치는가?”, “어떤 문화가 미술 교과서에 실리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며,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기반한 새로운 교육 방향이 모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② 비판적 교육학과 사회 정의 교육의 확산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이 확산되며, 교육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등의 영향을 받은 이 흐름은, 교육을 통해 억압된 집단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교육관은 문화적 다양성, 소수자 인권, 정체성 존중이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다문화 교육 이론의 발달을 이끌었고, 미술 교육에서도 이 방향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예술이 단지 표현의 도구를 넘어서,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탐색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확장된 것이죠.
③ 미국 내 민권 운동과 교육 현장의 변화
1960~7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운동, 여성운동, 라틴계·아시아계 커뮤니티의 권익 운동이 확산되며 교육에서도 단일 민족·문화 중심의 커리큘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백인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문화적 접근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이는 미술 교육에서도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 자료와 작가, 예술사 소개로 연결되었습니다.
James A. Banks를 중심으로 체계화된 다문화 교육 이론은 바로 이 배경에서 등장하였고,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 미술교육의 필요성은 점차 교육 현장 전반으로 확산되었습니다.
④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와 시각문화론의 영향
1980년대 이후 미술교육 이론은 점점 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와 시각문화론(Visual Culture Theory)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는 미술작품뿐 아니라 광고, 만화, 영화, 게임 등 모든 시각 자료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다문화 미술교육은 학생들의 문화적 배경에 기반한 교육, 다양한 이미지의 의미를 탐색하고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훈련, 주체적인 정체성 인식을 주요 목표로 삼게 됩니다.
다문화 미술교육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고정된 미적 기준, 단일한 문화 전통에서 벗어나, 문화 간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포용하는 예술 교육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다양성은 필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더 이상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시대적 맥락·사회적 위치·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예술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흐름이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예술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전처럼 유럽 중심의 미술사와 고전 회화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점차 비판받기 시작했고, 대신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자료, 이야기, 표현 방법을 포함하는 다문화적 접근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다른 나라의 미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의 가치와 맥락을 존중하며 함께 사고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3. McFee의 문화맥락 중심 미술교육
다문화 미술교육의 이론적 기반을 다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J.R. McFee가 있습니다. 그는 미술교육이 단지 미적 표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화 안에서의 미술, 즉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예술을 이해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McFee는 미술작품이 특정한 문화적 가치와 믿음을 반영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에서도 다양한 사회계층과 문화집단의 시각을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특히 소수집단, 이민자, 비주류 문화가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문화적 인식의 확장을 주장했는데요, 이는 포스트모던 관점에서 교육의 경계와 내용을 재정의하는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McFee의 접근은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라, 문화 간 대화와 해석을 통한 참여적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4. Banks의 다문화 교육 5단계
미국 교육학자 James A. Banks는 다문화 교육의 접근을 5단계로 체계화하여 교육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틀은 미술교육에서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자주 활용됩니다.
단계 | 설명 |
1단계: 기여적 접근법 | 다른 문화권의 유명 인물이나 축제를 단편적으로 소개 |
2단계: 부가적 접근법 | 기존 커리큘럼에 다양한 문화의 콘텐츠를 추가하는 수준 |
3단계: 전환적 접근법 | 다양한 관점에서 지식과 콘텐츠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 |
4단계: 사회적 행동 접근법 |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적 행동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단계 |
5단계: 다문화적 비판적 접근법 |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주변화된 시각을 통합하는 비판적 사고 중심의 접근 |
Banks는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서, 학습자가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관점을 이해하며 참여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다문화 교육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비판적, 다층적 사고와도 일치하는 방향입니다.
다문화 미술교육은 단순히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교육의 틀과 지배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문화 간 소통을 이끌어내는 교육적 접근입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사회문화적 변화 속에서 등장한 실천적 흐름으로, 중심과 주변, 단일한 진리 대신 다양한 시선과 정체성이 공존하는 교육의 장을 지향합니다. 미술 교육 역시 정답을 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가치와 경험이 만나고 확장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 움직임입니다.
2025.03.29 - [🎨 아트로그] -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술교육, Neo-DBAE란?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술교육, Neo-DBAE란?
미술은 시대의 사고방식을 반영합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듯, 교육의 영역에서도 기존 방식에 대한 재고와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jan01010.co.kr
2025.03.29 - [🎨 아트로그] -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미술의 전환점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미술의 전환점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미술의 전환점미술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이 개념은 단지
jan01010.co.kr
'🎨 아트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참여 미술교육(Socially Engaged Art Education) (0) | 2025.03.30 |
---|---|
시각문화 미술교육(VCAE),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교육의 확장 (0) | 2025.03.29 |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술교육, Neo-DBAE란? (0) | 2025.03.29 |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미술의 전환점 (0) | 2025.03.29 |
현대미술교육의 이론과 사상 : 이해중심의 미술교육 (0) | 2025.03.19 |